[식물해방일지⑤] 자연 없이 기업 없다...산림ESG, 선택 아닌 필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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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
∣ 소 사육·오일시드 생산 등으로 세계 산림 파괴↑
∣ 시민·투자자 인식 변화...“기업, 자연 보호해야”
∣ ‘숲의 가치’ 전파한 유한킴벌리·러쉬·SK임업
∣ 이윤 창출·지속가능한 미래 설계...‘일석이조’
∣ “산림 보존 활동, 고객 신뢰 얻는 강력한 무기”
인류는 오래전부터 인권을 바탕으로 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모든 인간이 천부적인 존엄과 권리를 가지며 이를 보호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은 보편적인 가치로 여겨졌다. 이후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인간 중심적인사고를 넘어 동물 또한 불필요한 고통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윤리적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떨까. 인류는 아직까지 식물이 단순한 자원 이상이며 고유한 존엄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식물의 생명을 경시하고 도구적 관점에서 이들을 착취한 결과 인간은 기후위기와 생태계 훼손이라는 결과와 직면하게 됐다. 식물이 소비의 대상을 넘어 존중의 대상이라는 관점이 이제는 필요한 때다.
본보는 ‘식물해방일지’ 시리즈를 통해국내에서 아직 생소한 개념인 식물 존엄성을 조명하고 식물을 도구로 취급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인간과 식물의 공존을 모색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특히 2023년 국내 최초로 발표된 식물 존엄성 선언을 바탕으로식물에 대한 새로운 윤리적 접근과 그 실천적 의미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에 지속 가능한 생태적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장을 만들고 정책적 전환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우리는 토지를 우리 소유의 상품으로 보기 때문에 그것을 남용한다. 우리가 땅을 우리가 속한 공동체로 볼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과 존경으로 사용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_미국생태학자 알도 레오폴드
인간이 없어도 식물은 살 수 있지만 식물이 없다면 인간은 살 수 없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산림은 수많은 야생 동식물의 터전이자 막대한 양의 탄소를 흡수하는 중요한 생태 자산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양한 생태계 보전역할을 하며 기후 조절과 수자원 보존 등에도 기여해온 산림을 ‘이용 가능한 자산’으로만 취급해 왔다.
그린피스와 메릴랜드 대학 연구팀이 2020년 제작한 야생 산림(원시림) 지도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세계 야생 산림의 약 12%가 사라졌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국토 면적의 약 15배 이상에 달하는 수준으로, 해당 연구는 2050년에는 21세기 초와 비교했을 때 절반 이상의 야생 산림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산림 파괴의 주된 원인은 소 사육과 오일시드(콩, 면화씨, 해바라기씨 등 기름을 짤 수 있는 농산물) 생산이다. 두 가지 원인이 전 세계 산림 벌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0%에 달한다. 그다음으로는 임업(제지·목재업), 쌀을 제외한 기타 곡물 농업, 채소·과일·견과류 농업, 쌀 농업, 등 순으로 삼림 벌채의 원인으로 꼽혔다.
인간이 나무를 이용하는 데만 몰두한 결과, 산림은 회복 불가능한 속도로 파괴됐다. 나무는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수분 순환과 기후를 조절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인류는 여전히 산림을 소비재로만 취급하고 있다. 이 같은행태는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렸고결국 인류에게 기후위기라는 심각한위기를 가져왔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식물을 더 이상 소비와 착취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상생을 시도하는 기업이나타나기 시작했다.환경 보호를중요한 평가지표로 여기는 ESG 경영 개념이 확산되면서나무를 심고 가꾸거나산림 훼손 최소화에 도전하고,산림 보전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도등장했다.이들 기업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숲과 동행하려는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기업의 변화는 자연이 없다면 인류도 살아나갈 수 없다는투자자와 소비자의인식에서시작됐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자연과 생태를 보호해야 한다는 윤리 인식이 높아진 가운데자연친화적 기업이 생존에 유리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식물 생명존엄을 강조한 식물 존엄성 선언제3장을 바탕으로, 나무를 꾸준히 심고 숲을 조성한 기업, 산림 파괴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한 기업, 나아가 숲 조성과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한 기업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산림ESG와 인간·자연 간조화로운 공존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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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보호’원하는 소비자...떠오르는 ESG 경영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위기가심화되면서 기업에자연과 생태를 보호해야 한다는 윤리 인식을 부여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현상은기업에 대한 평판과 실질적인 주가에 영향을 미치면서 기업이 기후위기시대에산림을 보호하는 것이 얼마나 필수적인 가치인지보여준다.
최근 국내 산림 훼손의 원인 중 하나로무분별한 개발 시도가 지목되고 있다. 이윤을 앞세운 개발 경영과 환경 파괴는오랜 기간 자연을 훼손해 왔다. 나무가 죽고 산림이파괴되면서 흡수되지 않은 온실가스가 기후 변화를 일으켰으며 심화된 기후 변화는 다시 숲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토의 60% 이상인 숲인 대한민국에서도 산림이 사라지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2010년 636만ha(헥타르)였던 전체 산림 면적은 2020년 629만ha로 연평균 0.1%씩 감소했다. 지난 30년간 서울보다 큰 면적의 숲이 인프라 건설 등 도시 팽창, 숲 관리 부실, 개발 압력 등의 이유로 사라졌다. 특히 최근에는 그린벨트 해제가 진행되며 더 많은 숲이 훼손되고 있다.
이에식물 생명 존중이인류의 미래 존립의 당락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로 부상했다.최근 ESG 경영이 기업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주제로 떠오르면서 기업도 사회의 요구에 발맞춰 변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후위기 전문 비영리단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는 ‘2023 세계삼림 보고서’를 통해 삼림 파괴에 따른 리스크 관리 방안을 공개하는 기업이 5년 새 300%가량 증가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자연을 향한 기업의 태도가 시민과 투자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요한 가치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가 나왔다.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는 그의 논문 ‘대한민국에서 환경법 위반 사실 공개와 주식 시장의 반응’(2006)에서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상장된 57개 기업 사례를 조사해 기업의 환경 위반 사실이 시장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다.
홍 교수는 “기업은 환경법 위반 사실이 공개되면 시장 가치가 떨어지는데, 국내 기업의 경우 이 현상이 캐나다나 미국의 유사한 사례보다 훨씬 크게 나타났고 하락폭이 개발도상국과 유사했다”며 “이때 신문 보도 횟수가 많을수록 시장 반응이 크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5개 이상의 신문에서 보도된 사건에서는 평균 35% 이상의 주가 하락이 발생했는데, 이는 미디어 주목도가 주식 시장의 반응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이는 기업의 환경 보호가 윤리적 의무에 머무르는 것을 넘어주가와 브랜드 신뢰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기업이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면서식물의 생명이 그 자체로 존엄하다는 논의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생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한 자연 보호에 대한 논의는 실천으로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2023년 농촌진흥청이 발표한식물 존엄성 선언의 제3장 ‘식물 존중의 적용 원칙’에 따르면 야생식물은스스로 번성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인간은 야생식물의 서식지에 살고 있는 생물과 토양 및 물을 포함한 비생물 요소를 보존하며 식물의 생존, 성장, 번식을 존중해야 한다.
식물의 다양성은 오랜 진화 과정의 산물이며 생태계 다양성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함부로 파괴돼선 안 된다. 또한인간에 의해 불필요한 경쟁 상황에 처한 야생식물은 인간의 간섭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선언문의 설명이다.
이 같은 배경 아래 단순히 산림을 자원으로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식물의 생명과 서식지를 하나의 생명 공동체로 존중하는 기업 사례는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속가능한미래의 방향성을제시할 수 있다.
유한킴벌리가 지난해 3월 강원도 동해시 초구동 봉화대산에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2024 신혼부부 나무심기’ 행사를 개최했다. [사진제공=뉴시스]
‘푸르게 푸르게’ 유한킴벌리...5700만 나무의 약속
야생 식물의 터전인 국내 산림 조성에 지속적으로 기여해 온 기업이 있다. 국내 위생, 유아용품 등 소비재 제조 기업인 유한킴벌리는 국내 기후위기가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기 이전인 1980년대부터 나무 심기 캠페인을 꾸준히 운영해 환경 친화적 기업으로 이름을 알려왔다.
유한킴벌리의 나무 심기 캠페인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는 삼림문화 확산과 도시숲 조성 등 국토녹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포함한다. 또 최근에는 북한과 몽골 등 복구가 필요한 산림을 위해 국외 활동으로 움직임을 확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유한킴벌리는 캠페인이 시작한 뒤 나무 약 5700만 그루를 심고 1만6451ha 면적의 숲을 조성해 왔다. 이 면적은 서울시의 약 27% 정도에 해당하는 넓이로, 조성된 삼림의 탄소 흡수, 온도 저감 효과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유한킴벌리는 서울 남산 등 숲가꾸기 대상지 4개소에서 연간 승용차 약 1367대가 배출하는 탄소를 흡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국립산림과학원은 주행거리가 1만5000km/년이고 에너지소비효율 등급이 1등급인 휘발유 승용차가 1년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1.2t라고 집계한 바 있다. 또 2021년 유한킴벌리는 국내 숲가꾸기 사업으로 조성한 조림지가 단위면적당 1.5도에서 최대 7.96도까지 온도 저감 효과를 낸 것으로 집계했다.
아울러 유한킴벌리는 멸종위기종인 국내 특산식물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국내에만 분포하는 멸종위기 고산 침엽수인 구상나무의 보전을 위해 경북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내 보존원을 조성하기로 협약했다. 오는 2030년까지 5만㎡ 면적에 구상나무 5만 그루를 키우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숲 운동으로 전 국민적 사랑을 받게 만들어준나무는유한킴벌리에게 ‘지속가능경영’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오랜 시간 우리 곁에 공존하며 삶을 이롭게 하는 나무와 숲은, 유한킴벌리가 ‘지속가능한 사회와 환경’을 만드는 게 기여하기 위해 장기간 이어온 윤리투명경영, 환경경영, 사회책임경영, ESG 경영 등의 가치를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이 알려지고 유한킴벌리가 사회책임 기업이라는 명예를 얻게 된 이후 유한킴벌리의 매출은 약 10배, 순이익이 수십 배 증가하는 결과를 얻게 됐다. 이 밖에도 유한킴벌리는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유한킴벌리의 사례는 경제적 실익과 식물 생명 존중 행보를동시에 충족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의를 지닌다. 식물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기업의 행보는 수익 창출이라는 기업의 목표와 자연과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동행이라는 사회적 가치까지 함께 실현하는 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러쉬코리아는 2022년 6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인근 숲을 복원하는 ‘웨스 토바 포레스트’ 캠페인 전개에 동참했다.[사진제공=러쉬코리아 페이스북]
비누,열대우림을 지키다...러쉬의 ‘되살림 경영’
기업 차원에서 개발 압력으로부터 산림 훼손을 막고 탄소 흡수원을 확충하는 데 일조한 기업도 있다.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화장품 브랜드 러쉬(LUSH)는 동물 실험에 반대하는 제품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재생가능한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제품을 생산하는 데에도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동물성 기름 대신 식물성 재료만을 사용하는 러쉬는 한때 팜오일을 주요 비누 원료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팜오일 생산을 위한 기름야자 농장이 열대우림 파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국제적 문제가 되자, 러쉬는 비누에서 팜오일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특히 팜오일은 인도네시아의 공장식 농장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농장을 짓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의 원시림이 크게 훼손돼 국제사회의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러쉬는 팜오일 없는 비누를 개발하고 제품 판매금을 기부해 열대우림을 보존하는 데 이바지하는 캠페인을기획했다.
2017년 러쉬의 ‘SOS 수마트라 캠페인’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 서식하던 오랑우탄 개체 수가 산림 파괴로 인해 급감하자 이들의 서식지인 열대우림 지대를 되살리기 위해 전개됐다. 러쉬는 팜오일이 들어가지 않은 오랑우탄 모양 비누를 생산해 판매금의 전액을 관련 협회에 기부했다.
이후 기부금은 수마트라 섬 북부의 국립공원의 기름야자나무 재배지역을 재구매하는 데 쓰였다. 러쉬는 구매한 땅에 3000여종의 토종식물을 심고 열대우림 지역을 복원했다. 이후에도 러쉬는 2년간 유사한 캠페인을 두 차례 더 전개함으로써 추가적으로 복원한 땅에 파촐리, 시트로넬라, 코코아 등을 심으며 ‘되살림 농업’을 실현하고 있다.
되살림 농업이란 종 다양성 보존, 토양 및 산림 보호 등을 통해 생태계를 풍성하게 하면서 농부들의 소득 창출을 돕는 농업을 말한다. 러쉬는 파촐리 등 새로 복원한 땅에서 재생가능한 농업 방식을 통해 얻은 농산물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러쉬의 한국 지부인 러쉬코리아도 2022년 6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인근 숲을 복원하는 ‘웨스 토바 포레스트’ 캠페인 전개에 동참했다. 이때 판매된 오랑우탄 모양 비누 역시 판매 수익금 전액이 기부되면서 멸종위기종의 서식지이자 생태통로인 웨스트 토바 지역의 숲을 지켜내는 데 한 몫을 더했다.
러쉬코리아 관계자는“최근 러쉬는 마지막 원시 열대우림이자 무분별한 농업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인도네시아 시메울루의 섬을 지키기 위한 제품을 출시했다”며“이를 통해 인도네시아원시림과 생태계를 보전하는 프로젝트를 후원할 예정이다.상생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동물 종을 보호하고 동시에생태계와 열대우림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러쉬는 이 같은 프로젝트가기업 활동과 자연의 연결점이 될수 있다고 믿는다. 이번 프로젝트를 비롯해 앞으로 이어질 다양한 노력을 통해 생태계와 생명들의터전을 지켜내고자 하는 러쉬의 희망을 사회에 전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러쉬의 지속적인 생태 복원 활동은 기업이 이윤 추구를 넘어 자연에 이익의 몫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공존의 길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비자들 역시 이 같은 행보를 인식하고 러쉬를 단순한 화장품 브랜드가 아닌 친환경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으로 호평하고 있다. 러쉬가 걸어온 길은 자연과의 공존이 기업 경영의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2022년 11일 충청북도 충주 인등산에 SK임업의 탄소중립 경영 가치관을 담은 디지털 전시관이 열렸다. [사진제공=뉴시스]
산림을 수익으로...SK임업이 제시한녹색 경제모델
앞선 사례들이 기업 이미지 브랜딩을 위해 친환경 경영을 유지했다면 산림 조성 자체를 경제 가치 창출과 연결한 사례도 있다. 산업적 산림경영의 길을 걷고 있는 SK임업은 지난 50년간 국내외 산림 및 녹지공간을 보전하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냈다. 최근 SK임업은 인간과 식물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해 자본과 생명의 접점을 모색하기로 하면서 기존의 조경 사업에서 점차 조림 사업으로 진화·발전시키고 있다.
조림을 통해 온실가스 흡수량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탄소배출권을 인정받는 ‘산림탄소’ 사업은숲의 보존 가치를 탄소 저장 측면에서 평가하는 방식이다. SK임업은 나무를 통해 얻은 이익을 한국고등교육재단을 후원하는 데 사용함으로써 미래 인재 양성에도 힘쓴다.
SK임업이 보유한 임야는 여의도의 약 15배에 달하는 4500ha 규모로, 과거에는 주로 목재나 관상용으로 활용되던 이 숲이 보존되면서 지금은 거대한 탄소 저장고로 기능하고 있다. 2007년 숲속에 개원한 SK수펙스센터도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필로티 구조(건물을 땅에서 띄운 방식의 건축 용법)로 지었다. 해당 센터는 현재 SK그룹 임직원의 교육 장소로 쓰이고 있다.
SK임업은 조림 기반 탄소배출권을 개발하고 확보한 국내 최초 기업으로서 국내 산림에 대해 ‘산림탄소상쇄제도’를 통해 탄소를 ESG 자산으로 바꾸는 데 역량을 모으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산림탄소상쇄제도란 숲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는 성질을 이용해 탄소를 줄인 만큼 탄소크레딧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를 통해 정부로부터 인증된 탄소크레딧은 자발적 탄소시장을 통해 거래할 수 있다. 이 탄소크레딧은 기업에일종의 탄소중립 실현 증서로써활용되며, SK임업은 해당 사업을 통해 향후 30년간 매년 3만7000t의 이산화탄소가 상쇄될 것으로추측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산림 전용 및 황폐화 방지 사업(REDD+·레드플러스)을 진행하고 있다. 레드플러스 사업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산림을 보호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 산림 보호 노력이 이뤄질 시 이를 재정적으로 보상해 주는 제도다. SK임업은 해당 사업으로 2030년 기준 탄소배출권 1600만t을 확보하고 아프리카와 중남미까지 진출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SK임업은 누리집 소개글을 통해“약 반세기에 걸친 세월 속에 오늘날 SK임업은 단순히 ‘조림’만을 영위하는 기업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 더 많은 자연과 숲의 가치를 창출하고자 다방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또한 ESG 경영에 발맞춰 기후변화 대응 및 탄소저감 활동을 실천하고자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적극 추진 중이며, 산림을 통해 인류의 삶의 가치를 한 단계 높이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이 산림을 보존하는 활동은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경제적 가치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SK임업의 사례는 산림 보전이 탄소배출권이라는 새로운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생태계 회복과 기후 대응에 기여하는 기업의 새로운수익 가능성을 제시한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산림ESG, 지속가능한미래를 심다...“공존의 미래를 위해”
기업은 오랫동안 자연을 착취하며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아 왔다.기업은 이윤 창출이라는 최우선 목표 아래 자연을 훼손했고소비자들도기업의 서비스를 거리낌 없이 소비했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연을 파괴하며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열광하는 소비자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자연을 외면한 기업은 생존하지 못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에 최근 일부 기업들은 기존의 경영 방향을 유지한 채 자연과 공존하며 지속가능성을 확보할길을 찾고있다. 자연과 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한국경제인협회가지난 3월 발표한 ‘소비자 ESG 행동 및 태도조사’에서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응답자10명 중 7명은 “환경보호 우수 기업의 제품에 추가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과 발맞춰 등장한식물 존엄성 선언의 제3장 ‘식물 존중의 적용 원칙’에서는 식물이 어떤 방식으로 존중받아야 마땅한지 설명한다. 특히 해당 장에서는 야생식물이 오랜 진화 과정의 산물이며 생태계 다양성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함부로 파괴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서식지 파괴 등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은 종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봤다.
기업과함께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고 있는 산림청에서는 산림 보존 활동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고객의 신뢰를 얻게 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산림청 산림정책과 이우리 사무관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라면 산림을 주요한 탄소 흡수원으로 인식하고 이에 기반한 실행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며 “국내 기업이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ESG 경영 전략 안에 산림을 통한 온실가스 흡수, 생물다양성 보호, 산림인증제품 활용 등을 반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무관은 “특히 산림 보존 활동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측면에서 큰 효과가 있다. 친환경 소비와 가치 소비가 확대되는 흐름 속에서 산림 보존 활동은 고객의 신뢰를 얻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면서 “산림 보존활동이 보다 다양한 방식의 참여로 확장되기 위해선산림의 탄소흡수 효과, 생물다양성 회복 기여도, 지역사회 연계성과 같은 ‘질적 성과’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숲 가꾸기, 나무 심기 등 산림을 보존하는 활동에 투자를 늘리는 추세에 대해 산림ESG가 특정 사업 분야에 제한되지 않으며환경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백년숲학교 산림ESG전문가 한새롬 이사장은 “보통 기업들은 본인들의 사업 분야 안에서 ESG를 달성하고자 노력하지만 산림ESG는 본인들의 산업 분야가 아니더라도 시민과 함께 사회·환경적 가치를 창출하고 동시에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거버넌스적 가치를 창출하는 ESG 프로젝트란 점에서 선호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산림ESG는공동체적, 생태적 가치에 대한 공감이 기반”이라며 “단순히 나무를 몇 그루 심었다는 단기적인 성과보다 숲이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과정이 중요하다. 산림ESG 교육은 이 같은 생태적인 감수성을 갖춘 메시지를 기업에 전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숲과 식물은 생태계의 지지 기반이자 기후위기를 극복하게 할 타개책으로서 그자체로 인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그들 또한 하나의 생명이자 인류와함께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동반자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지난해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55도 뜨거운 것으로 관측돼 전 세계적인 충격을 가져왔다. 이는 175년 관측 사상 가장 높은 온도이자 국제사회가 지구 온난화의 한계선으로 설정한 1.5도에 가까이 다가선 기록이다.일각에서는 당장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속출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인류는 위기 의식을 느끼는 일조차 뒤로 미루고 있는실정이다.
미국의 유명 환경운동가데이비드 브라우어는“죽어버린 지구에서 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기업은 자연과의 상생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책임과 가능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산림 파괴의 주역이자 경제 성장의 주체인기업들이 더 나은 공존의 미래를 위해 자연을 보호하고 식물 생명 존중을 몸소 실천할 때 변화는 시작된다.이제는 ‘비즈니스 그 이후’를 고민해야 할때다.
2025 / 06 / 04